본문으로 바로가기

[약 이야기] : 탈리도마이드 사건(콘테르간 스캔들)


탈리도마이드(콘테르간약품)최초의 탈리도마이드인 "콘테르간"


  개요


블로그의 첫 약 이야기는 일명 콘테르간 스캔들(Contergan-Skandal)로 알려진 현대의학 역사상 최악의 사건 중 하나인 "탈리도마이드 사건"을 다뤄보려고 한다. 글에서 다루는 주제는 다음과 같다.


· 탈리도마이드 사건

· 탈리도마이드 사건의 의문점

· 세계적 피해 규모, 그리고 윤리 의식

· 탈리도마이드 사건 이후


  탈리도마이드 사건


구조식은 아래 그림과 같고, 공식 화학명(IUPAC)으로는 (RS)-2-(2,6-dioxopiperidin-3-yl)-1H-isoindole-1,3(2H)-dione 이다.

탈리도마이드Thalidomide

탈리도마이드는 독일의 한 작은 제약회사인 그뤼넨탈(Grünenthal GmbH)에서 1956년에 새로운 항생제를 개발하던 도중 생인 부산물로써 처음 발견되었으며, 이 화학물질을 생쥐, 쥐, 기니피그와, 토끼 등에게 간단한 임상실험을 하여 상당히 안전한 진정제라는 결과를 얻었다. 


그뤼넨탈은 안정하다는 결과를 얻고 여러 회사에 팔기 위해 접촉을 했는데, 이를 불안정하다고 판정한 미국을 제외하고, 몇 곳의 제약회사에 교섭을 성공했다. 그리하여 시간이 지난 1957년 10월에 탈리도마이드는 서독에서 처음 콘테르간(Contergan)이라는 상품명으로 의사의 처방 없이도 구입할 수 있는 진정제, 수면제로 시판되었다. 


또한 콘테르간 제품을 처음 시판할 때 ‘무독성 약품’이라고 내세워 큰 인기를 얻었다. 특히 임산부들의 입덧에 효과가 좋다는 소식이 퍼져, 많은 임산부들이 이 약을 사용하게 되었다. 하지만 약 5년 후인 1961년 11월 독일, 그리고 1962년 여름 일본에서 제품 판매를 금지시킨 것이다.


Thalidomide_BabyContergan Kids


그 이유는 콘테르간을 복용한 임산부에게서 팔다리가 없거나 짧은 신생아들이 태어났고 곧이어 탈리도마이드의 부작용이라는 게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때 기형으로 태어난 아이들은 약 2만명에 달했다. 현대의학 역사상 최악 중 하나인 이 사건을 탈리도마이드의 첫 상품명인 콘테르간의 이름을 따서 "콘테르간 스캔들"이라고 많이 부른다. 또한 이때 기형아 태어났던 아이들을 탈리도마이드의 이름을 따서 콘테르간 키즈(Contergan Kids) 혹은 탈리도마이드 베이비(Thalidomide Baby)라고 한다. 기형으로 태어난 이 아이들은 신체적 기형뿐만 아니라 생존률도 매우 낮았다. 그나마 살아서 성인이 된 아이들도 한평생 후유증을 안고 살아야 했다.



  여러가지 의문점



  왜 5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난 직후에야 이 사실이 밝혀졌을까?


탈리도마이드의 위험성은 몰랐던게 아니다. 판매 초기부터 이 약을 복용한 환자들 중 신경 손상이 일어났다고 약물 부작용(side effect)에 대한 보고와 논의는 있었지만 이는 무시되었으며, 태아 발육에 손상을 주어 선천적 기형을 만들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실험은 하지 않고, 오직 동물실험에서(쥐와 토끼 등에게서)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으로 임산부들에게 효과 좋은 “기적의 약”으로 팔렸기 때문이다. (때문에 탈리도마이드 사건은 동물실험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때 자주 언급된다.) 


그러다가 5년이 지난 후에서야 독일의 한 소아과 의사(비두킨트 렌츠)가 해표상지증(phocomelia, 양쪽 팔의 결손이나 단축이 보이는 기형증)을 앓고 있는 유아의 수가 크게 증가하였다는 걸 보고한 후 국가가 큰 혼란이 일어난 것이다. 추후 해표상지증은 입덧과 메스꺼움을 억제하기 위하여 임신 초기 3개월 동안에 탈리도마이드를 복용한 임산부에게서 태어난 아기들에게 나타나는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에 탈리도마이드는 판매 중단 되었다.


  탈리도마이드의 부작용은 왜 나타난 것일까? 


문제는 탈리도마이드의 ‘구조’에 있었다. 탈리도마이드의 비슷하지만 다른 구조인 ‘거울상 이성질체(Enantiomer)’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거울상 이성질체

사람의 손에 비유하자면 사람의 왼손을 거울에 비추면 오른손과 같은 모습을 보이지만, 왼손과 오른손은 서로 같은 방향으로 포갰을 때 겹쳐지지 않는다. 이처럼 같은 골격이지만 거울에 비쳤을 때 서로 겹쳐지지 않는 관계에 있는 분자들을 광학 이성질체 또는 거울상 이성질체라고 한다. 또한 거울상 이성질체 관계에 있는 두 분자는 물리적 성질, 분자식이 같으나 입체적으로 보면 모양이 틀리다.(자세히 말하면 편광을 회전시키는 또는 기울이는 정도가 다르다.) 물리적 성질이 같기 때문에 물리적 방법으로 분리는 어렵다. 


(R)-탈리도마이드(R)-thalidomide (S)-탈리도마이드(S)-thalidomide


거울상 이성질체 관계에 있는 두 탈리도마이드는(R형과 S형, 거울상 관계) 서로 물리적 성질은 같지만 입체적인 구조가 다르다. 이 약물을 복용 했을 시 타겟 수용체(대개 거울상 이성질체를 갖는다.)에 약물이 붙으면 R형은 몸에 도움을 줬었던 진정 및 수면작용이 있는 반면 S형은 혈관의 생성을 억제하는 부작용이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탈리도마이드를 복용한 산모에게서 태아의 세포가 성장하고 분화할 때 필요한 영양분을 혈관이 공급해 줘야하는데 혈관이 자라지 못하니 당연히 태아가 제대로 자라지 못한 것이다. 이러한 결과가 탈리도마이드 아이들이 태어나게 된 참극을 초래하게 된 것이다.


참고

이처럼 여러 이성질체의 형태를 갖는 약들은 완전히 R, S형 등으로 분리한 후 효과를 보이는 것만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요즘의 신약들은 100% 기재해야 한다.) 이지만 특히 탈리도마이드의 경우는 한쪽 이성질체만 복용하여도 체내에서 다른 이성질체로 상호 전환되어 결국 부작용을 갖는 분자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분리하여 사용할 수 없으며, 진정, 수면작용으로는 사용할 수 없다.


  세계적 피해 규모, 그리고 윤리 의식


그뤼넨탈 및 그뤼넨탈과 교류한 회사들이 조금만 더 신경 써서 임상실험을 했더라면 유럽에서 8천명, 나머지 전 세계 48개국에서 1만 2천명 이상의 기형아가 태어나는 비극이 오진 않았을 것이다. (탈리도마이드를 불안정하다고 여겨 받아들이지 않았던 미국의 영아의 부작용 사례는 17건에 불과했다.)


미국 FDA의 약물학자 및 의사였으며 당시 약물 심사위원이였었던 프랜시스 켈시(Frances Oldham Kelsey)는 처음 맡았었던 약품이 탈리도마이드였었다. 켈시는 제조회사가 제출한 내용 중 서류미비, 자체 실험자료 미비, 태아에게 미치는 형향 검토의 불충분 등을 발견하고 제약회사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테스트를 할 것을 요구하며 끝끝내 허가를 거부했다. 


덕분에 미국에서의 탈리도마이드 부작용사건은 극히 미미했고 프랜시스는 이 공로로 대통령 케네디로부터 훈장을 받았다. (2010년엔 FDA 에서 그녀의 이름을 딴 켈시 상까지 만들었다고 한다.) 그녀처럼 다른 회사들이 치밀했으며, 어렵지만 제안을 거절할 수 있을 용기가 있었더라면 대규모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을텐데... 라는 큰 아쉬움이 남는 사례이다.


  탈리도마이드 사건 이후


앞서 탈리도마이드의 부작용과 그에 따른 참담한 사례를 살펴보았지만 부정적인 부분만 있는 건 아니다. 이제 탈리도마이드 사건이 생긴 이후 시점으로 가보려 한다.


  약물에 대한 경각심


탈리도마이드가 전 세계적으로 커다란 흑역사를 남겼지만 이점도 있었다. 


탈리도마이드가 비극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문제점 중 한 가지는 임상시험을 제대로 거치지 않은 점이다. 시험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문제가 발생하여 이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 의약품 시험과정이 상당히 개선되었으며(새로 약을 개발할 경우에는 약의 효과 외에 약의 안전성이 충분히 입증되어야만 정부에서 허가하게 되었다), 특히 기형발생 조사가 지금은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시행되는 신약 승인 과정의 기본이 되는 부분이다. 오래 걸리며 까다롭긴 해도 이러한 FDA 시험법이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후 발견된 탈리도마이드 약물의 이점


레날리도마이드탈리도마이드 개량신약인 레블리미드(Lenalidomide,다발성골수종 치료제)


탈리도마이드가 꼭 나쁜 점만 있던건 아니다. 1960년대 초반 이스라엘의 한 의사가 한센병 환자들에게 수면제로 탈리도마이드를 사용하다가 나성결절에 효과가 있음을 발견하고, 그 뒤 전 세계적으로 행해진 실험에서 90%이상이 치료되었음이 보고, 한센병 치료제로 다시금 부활하게 되었다. 


이어 하버드의대의 포크만 (Judah Folkman) 그룹이 부작용인 혈관 생성 억제 효과가 암세포를 굶겨 죽이는 역할이 있음을 발견하였고, 1998년 미국 FDA는 한센병 합병증 치료용으로, 2006년에는 다발성 골수종양 환자에게 제한적으로 사용을 승인했다. 다만 임산부 또는 임신을 희망하는 여성이면 절대 금기해야할 약품이라 할 수 있다.


  콘테르간 영화와 그뤼넨탈의 사과

콘테르간영화 콘테르간(좌), 그루넨탈 최고 경영자인 헤럴드 스탁의 공식 사과(우)

여담인데, 2006년 독일의 제1공영방송인 ARD에서 탈리도마이드 사건을 다룬 2부작 영화 '콘테르간'을 제작했었다. 콘테르간을 만든 제약회사인 그뤼넨탈은 이 영화가 방영되는 걸 막기 위해 독일법원에 방송금지 소송을 냈었다. 하지만 재판까지 간 끝에 영화는 1년 후인 2007년에 무사히 방영될 수 있었고, 독일의 각종 영화제를 휩쓸었다. 


콘테르간 영화로 인해 탈리도마이드 뿐만 아니라 약물에 대한 경각심을 다시 한 번 일깨웠을 것이라 생각한다. 참고로 최초 탈리도마이드인 콘테르간을 만든 그뤼넨탈 제약회사는 콘테르간 스캔들이 일어난 지 반 세기가 지난 2012년도에야 그뤼넨탈의 최고 경양자인 헤럴드 스탁은 피해자들에 대해 공식 사과를 했다고 한다.


공감주세요